[한국경제] 터널내 도로 금만 가도 점검하라니…공공기관 "다 막고 공사할 판"

모호한 중대재해법

지자체·공공기관도 대혼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D-8

산업재해뿐 아니라 시민재해도

법 적용 대상·책임소재 불분명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공공기관이 혼란에 빠졌다.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기준이 모호하고 현장과 동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에서 동대구로 가던 중 탈선한 KTX-산천 열차.  한경DB

오는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산하 공공기관이 혼란에 빠졌다.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 등에서 발생하는 중대시민재해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이 기준이 모호하고 현장과 동떨어졌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지난 5일 서울에서 동대구로 가던 중 탈선한 KTX-산천 열차.

 

 

경기 평택 냉동창고 화재, 광주광역시 아파트 공사현장 붕괴 같은 대형 사고가 잇따르면서 오는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의 장이 처벌 대상이 되는 중대시민재해를 둘러싸고 일선 공공기관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

 

18일 정부 각 부처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소방청은 지난달 30중대시민재해 해설서를 관련 기관에 배포했다. 지난해 11월 말 고용노동부가 민간기업 생산현장에 적용되는 중대산업재해 해설서를 내놓은 것보다 한 달가량 늦었을뿐더러 중대재해법 시행이 한 달이 채 안 남은 시점이었다.

 

중대시민재해란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에서 발생한 결함에 따른 재해를 말한다. 중대재해법에는 중대시민재해가 발생하면 정부 부처 장관, 지방자치단체장, 공공기관장 등을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불특정 다수 시민에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현장의 근로자 사망사고 등을 일컫는 중대산업재해보다 파급력이 클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공공기관장은 시민재해 부문에서 가장 혼선이 많은 경영책임자 등’ ‘실질적인 지배·운영·관리의 의미와 적용 범위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설명해주지 못했다일반시민과 공공 근로자의 안전이 상충하는 경우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지침이 없었다고 했다.

 

그 결과 가이드라인 발간 후 곧바로 소집한 화상회의가 정부 성토의 장으로 변했다는 게 이 기관장의 설명이다. 강세영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사기업에 비해 인력 충원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공공기관은 안전관리 업무에 충분한 인력을 배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는 데 한계가 있다상당수가 아직도 법 시행에 대비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시민재해' 가이드라인에 지자체·공공기관 대혼란

27일 시행지자체 등 공공부문 사업장 수 아직 파악도 안 돼


최근 한 공공기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임직원 화상회의가 열렸다. 정부가 지난달 말 배포한 중대시민재해 해설서를 숙지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곧 정부 성토장으로 변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법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선이 왔다고 토로했다.

 

터널내 도로 금만 가도 점검하라니…공공기관

 

 

공공 부문 사업장 수도 파악 안 돼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의 주요 축인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그간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아온 산업재해와 달리 참고할 판례가 없고 범위가 훨씬 넓은데도 불구하고 법과 시행령, 정부 가이드라인까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 공공 부문에서 이달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곳은 지방자치단체 243곳과 지방공공기관 460(39%)이다. 지방공공기관 1177곳 중 490곳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으로, 법 시행일로부터 2년 유예를 받았다.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은 2024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정부는 공공 부문의 중대재해법 적용 개별 사업장 수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워낙 적용 범위가 넓다 보니 대상을 취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새도 없이 법과 시행령을 제정했다정부 가이드라인을 법 시행 불과 한 달 전에 내놓은 것은 졸속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책임자법적 해석 논란


중대재해법상 공공 부문에서 혼선이 가장 많은 건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정부 부처 장관지자체장지방공공기관장도급·용역·위탁 사업자로 이어진 수직관계에서 사고 발생 시 책임과 안전 조치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 대목에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에 근거한 것인 만큼 최대한 엄격하게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교수는 형법이 수반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 의무 주체를 명확히 특정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해석을 넓게 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가 소유하고 서울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효창운동장의 경우 하도급을 준 환경미화업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법으로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축구협회장, 하도급업체 대표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가 사고 예방 주체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해 기관장들이 도급·용역·위탁에 대한 안전관리를 회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법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 위탁 사업장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이드라인이 혼란 더 부추겨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정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공중이용시설에 교량도로 터널도로는 포함되고 일반도로는 제외되거나, 어린이집은 들어가고 유치원과 학교는 빠진 게 그런 사례다. 시외버스는 해당하지만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는 포함되지 않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을 정부 가이드라인이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해설서에는 터널 노면 포장의 균열 신고 접수 시 긴급 안전점검, 보수보강, 이용 제한 조치 등 업무를 취하라고 명기돼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현장을 무시한 지침이란 게 일선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포장 균열까지 이용 제한을 하면 전국 터널을 모두 폐쇄하라는 뜻이라며 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해 시민 생명이 위협받아도 터널 노면 때우러 달려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부실하게 제정된 중대재해법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지금이라도 충분한 재논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수정/최진석 기자 agatha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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